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걷는사람, 하정우 292p
하정우가 아는 정신과 의사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환자들에게 그게 무엇이든 루틴을 정해놓고 어떤 기분이 들든 무조건 지킬 것을 권한다. 여기서 루틴이란 내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얼마나 골치 아픈 사건이 일어났든 간에 일단 무조건 따르고 보는 것이다. 하정우가 지키는 루틴은 다음과 같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단 런닝머신 위에 올라가 몸을 푼다.
- 아침식사는 반드시 챙겨먹는다.
- 작업실이나 영화사로 출근하는 길엔 별일이 없는 한 걷는다.
이 루틴들은 고민과 번뇌가 눈덩이처럼 커지게 전에 묶어두는 동아줄 같은 것이다. 하정우에게 걷기란 그저 운동을 넘어서 인생을 지탱하는 닻줄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동,서양을 막론한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산책을 즐겼다는 사실이 기억이 났다. 칸트는 마을 사람들이 그가 산책가는 모습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규칙적인 산책을 30년 동안 이어갔으며, 홉스, 아인슈타인, 루소, 정약용도 산책을 강조하며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산책을 그저 취미가 아닌 명상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길을 걷던 중 생각해냈다는 일화도 있고, 니체는 "심오한 영감, 그 모든 것을 길 위에서 떠올렸다"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걷기는 단순히 몸을 푸는 것을 넘어서 머리의 준비운동을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은 잘 걸어다니지 않는다. 대중교통이 잘 되있어서인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걷기보다는 지하철과 버스, 택시를 이용한다. 쇼핑같은 특수한 목적이 있지 않은 한 걸어다니는 일은 최소로 하고 대중교통을 통해 빨리 볼일을 보고 집에서 쉬길 원한다. 하지만 하정우는 하루 3만 보, 가끔은 10만보 씩 걸어다닌다고 한다. 물론 하정우도 언제나 걷고 싶은 건 아니다. 눈을 떳을 때 온몸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지는 날, 하정우도 사람이기에 그런 날이 없을 리가 없다. 하정우는 그런 정말 걷기 싫은 날은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런닝머신 앞까지 이동한다고 한다. 그러면 걸어볼까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차오르고 한걸음 씩 걷게 된다고 한다. 첫 걸음은 힘들더라도 한 발만 떼면 걸어진다. 관성으로 걷는 것이다.
또한 하정우는 공동체를 이용해 걷기를 습관으로 유지하고 있다. 모두 함께 걷기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렇고, 모두의 핏빗의 데이터를 공유하여 같이 걷는 친구들이 언제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누군가의 걸음수가 어제와 다르게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면, 일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거나 아픈 건 아닌가 안부를 물어보기도 한다. 걷기 귀찮은 날에도 친구들에게 자신이 오늘 걷지 않았다는것을 들키기 싫어 걷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독서모임을 통해서라도 책을 읽으려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공동체와 상호작용을 하며 걷기에 하정우가 더욱 걷기를 소중히 여기며 '걷는사람 하정우'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걷기는 독서와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잘 하지 않는다. 인생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럴 시간이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십 분 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하정우는 공동체를 이용해서 걷기와 매주 1권의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는 습관을 친구들과 함께 지켜나가고 있다. 우정이 똑똑하고 건강한 사람을 만든다. 그 증거가 바로 하정우인 것이다.
나는 하정우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신과 함께나 허삼관같은 영화도 보지 않았으며, 군도에서도 하정우보다는 강동원만 바라봤기에 이 사람이 어떤 연기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하정우라는 사람과 가볍게 이야기 하는 느낌을 받았으며, 나중에 하정우와 대화할 일이 생기면 그와 편하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서가 없고 가벼운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가볍게 읽으면서 하정우라는 사람을 알고 그와 대화하며 내 삶을 돌아보기에 좋은 책이였다.
책 : 걷는사람, 하정우 -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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